“왜, 이것도 실수라고 말해 보지?”
내 말을 못 듣진 않았을 텐데 여자는 말이 없었다.
이제 보니 언제 힘이 빠졌던 건지 몸만 구부리고 있던 여자의 무릎은 땅바닥에 맞닿아 있었다.
누가 보면 나한테 무릎이라도 꿇은 줄 알겠다. 더는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 나는 뒤돌아 하녀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하녀는 날 보며 입을 벙긋거렸다. 그 입이 소리 없이 움직여 말을 전달했다.
‘고맙습니다.’
룰루홀덤 눈앞에 제 주인이 있으니 소리 내서 말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야 당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보다도 나는 후에 이 하녀가 받을 보복이 걱정되었다.
‘지금이야 우연히 마주쳐서 도와준 거였지만.’
안 보이는 데서 화풀이를 하는 것쯤이야 저 여자에게 어려운 일도 아닐 터였다.
그러나 이 이상 내가 이들 사이에 끼어들면 상황은 더 악화할 뿐이었다.
나는 이쯤에서 이 일에 더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내 코가 석 자기도 해.’
그 생각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눈앞에 우뚝 두 다리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
내 앞을 가로막은 남자가 씩씩한 인사를 건넸다.
“신시아 영애, 이것 참 오랜만일세!”
“아, 네, 네. 안녕하신가요? 코, 콘스타 대공 각하.”
“그래, 그래, 이렇게 우리가 사적으로 인사하는 건 처음이지?!”
‘아, 진짜?’
뜻밖의 말이었다. 저 대공이라 불린 남자가 워낙 반갑게 인사하기에 나는 또 둘이 절친한 사이인 줄 알았다.
그 말이 맞긴 한 듯 인사를 받는 신시아도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둘 다 연회에 초대된 사람인가 보네.’
동쪽 홀은 별채 쪽에 있고, 나는 일부러 본관에 가까운 곳만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이쪽에 자꾸만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얀이랑 같이 오는 건데.’
나야 당연히 본채 근처로만 돌아다닐 생각이었으니 굳이 호위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오래 산책할 생각도 아니었고 금방 방에 돌아갈 생각이었으니까.
‘얀이 있었다면 안아 달라고 해서 방에 갔을 거야.’
옆으로 지나가려 했다. 그러나 남자의 발이 옆으로 한 걸음 옮기더니 다시 앞을 막았다.
‘뭐지?’
우연인가 싶어 다시 옆으로 몸을 옮겼는데, 남자는 또다시 우연인 척 내 앞을 가로막았다.
의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남자는 내 쪽으론 아예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마치 내가 키가 너무 작아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였다.